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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의 대립...그리고 설리

전직 아이돌 가수이자 배우를 희망(?)하던 설리가 오늘 자살을 하였다.

지나한 현직 법무부장관의 검찰 개혁과 이어지는 사퇴의 소용돌이를 뒤덮는, 생전 이슈 메이커였던 그녀의 그 어떤 논란보다 큰 충격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무엇이 충격이었기에 실시간 검색 상위권을 하루 종일 오르내리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아니라, 자살할 것 같지 않은 연예인의 자살이라는 놀람과 남자이든 여자이든 그녀를 비난했던 스스로에 대한 황망한 부끄러움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점점 고조되는 대한민국의 한남 vs 김치녀의 대결 속에서 그녀는 어느 쪽에서든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 하였다. 노브라로 대표되는 훔쳐보기의 대상으로 광고 수익이 필요한 황색 언론의 메인 기사 밑에는 스스로 성상품화를 지향하는 속물이라며 처단하려는 마녀 사냥 댓글이 항상 따라 다녔다. 강철같은 멘탈의 소유자처럼 보였기에 다른 연예인이었으면 법적 소송이 난무했을 악성 댓글은 항상 그녀의 몫이었다.

과연 그녀는 진정한 해탈 페미였을까?

그녀 역시 지배계급보다 강력한 대중이라는 계급의 5호-담당제같은 사슬과 억압을 궁극적으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목을 얽어매놓은 카스트 계급에서 살아남지 못한것이다. 강해질려고 해도 심신을 점점 만신창이가 되고, 나아가려고해도 발목을 잡힌 그녀의 정신은 어지러웠으리라.

작금 대한민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좌우 이념 정치가 아닌 제로섬 정당싸움과, 한남과 김치녀가 키보드 워리어로서 지구상 어떤 민족이나 인종보다 서로를 은근 멸시하는 침묵내전에서 그녀는 몇 안되는 마구 욕을 써낼 수 있던 공통의 적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녀의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을런지는 모르나, 그 행복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거의 소수를 제외하고 그녀는 가십거리였을 뿐이고 존중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녀의 죽음 상황에서 나는 안도와 수치를 동시에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내가 남자라는 생물-사회학적 우월감과 나와는 상관없는 듯 보이는 내전 밖에서 양비론적 태도로 조소만 짓던 부끄러움말이다.

그렇다고 원효대사가 해골바가지로 깨달음을 얻듯이 내가 행동하는 사람이 되지는 못 하리라 : 나 역시 5호 담당자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말 할 수 있다.

곧 많은 사람들은 그녀를 빠르게 잊거나 잊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뉴스를 접하고 몇 시간만에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